YUI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YUI. 이 분에 대해 위키백과에는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철 들기 전에 이미 아버지는 없었고, 엄마와 단 둘이 살았다. 아버지에 대해선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어린 시절은 마을 친구들과 뛰어놀기 좋아하는 활발한 아이였다. 그 무렵,막연하게 가수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는 노트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
 고교에 진학한 뒤,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그러나 일과 학업을 병행하느라 무리한 나머지 입원하게 된다. 퇴원한 뒤, 고교를 중퇴. 음악학원을 다니며 기타 연주와 작곡을 공부했다.
 이불 위에 앉아 기타를 연습하며, 그 때쯤 알고 있던 기타 코드를 바탕으로 최초의 자작곡 <Why me>를 만들었다. 후쿠오카시에서 길거리 라이브를 시작하였고,학원과의 인연으로 라이브 하우스에도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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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3월,학원 관계자의 권유로 소니 뮤직 SD오디션에 응모하였다. 약 2만명에 달하는 응모자 가운데 경쟁을 거친 10명 중 한 사람으로 최종심사를 받게 된다. 이 때도 길거리 라이브 때와 같이 바닥에 앉아 기타를 치며 「Why me」「It’s happy line」을 노래하였다.심사 기준은 두 개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지만,”제발 들어주었으면 한다”며 「I know」를 추가로 노래하였다.이 오디션에서 YUI는 최고점수를 받았다. 이를 계기로 데뷔가 결정된다.
 YUI는 2005년 2월 23일에 〈feel my soul〉로 메이저 데뷔하기 이전에, 2004년 12월 24일에 인디즈 데뷔 싱글 〈It’s happy line〉을 발매했다. 이 곡은 후에 5번째 싱글인 〈Good-bye days〉에 커플링 곡으로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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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2월에 발매한 첫 앨범 《FROM ME TO YOU》는 첫주 판매량 6만장대를 기록했지만, 이후 발매된 싱글들이 좋은 성적을 기록하면서 1년 넘게 오리콘 차트에 진입하면서 2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 6월에는 영화 《태양의 노래(タイヨウのうた)》에 주연으로 출연해 주제가인 〈Good-bye days〉를 히트시켰고, 〈Rolling star〉, 〈CHE.R.RY〉 등의 작품을 통해 정상급 여가수로 성장했다.

 2007년 4월 발매된 두 번째 앨범 《CAN’T BUY MY LOVE》는 유이의 작품들 중 처음으로 오리콘 주간 차트 1위를 차지했고, 이어 드라마 주제곡으로 쓰인 9번째 싱글 〈My Generation / Understand〉과 영화 주제곡으로 쓰인 10번째 싱글 〈LOVE & TRUTH〉가 발매 첫주에 주간 차트 1위를 차지했다. 2월 27일에는 11번째 싱글〈Namidairo〉가 발매 되었다. 수록곡으로는 〈Namidairo〉와 〈I wanna be..〉 등 두곡이 수록되어 있다. 4월 9일에는 3집 〈I LOVED YESTERDAY〉가 발매 되어 팔리고 있다. 〈Laugh away〉,〈Love is all> 등의 곡이 수록되어 있다.
 그녀는 영화 《태양의 노래》가 대한민국에 개봉된 이후 앨범 2장과 싱글 〈Good-bye days〉를 대한민국에 라이선스반으로 발매했고, 싱글 〈My Generation / Understand〉도 라이선스반으로 발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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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이 YUI입니다. 이 내용은 백과사전에 있는 내용이라, 업데이트가 덜 된 것 같군요. -_-;
 그 후로도 YUI는 CHE.R.RY, SUMMER SONG 등의 히트 싱글을 내다가 약 1년 반 동안의 슬럼프를 겪다가 이번 2009년 6월 3일, Again을 내면서 또다시 활동을 재개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이 분과 그 노래를 알게된 것은, 강철의 연금술사 리메이크의 오프닝인 ‘Again’이 처음이었던 것 같네요. 그 때는 “어쩜 저렇게 작중 인물의 목소리나 작품 스토리와 잘 맞아 떨어질까”하며 신기했었지요. 그렇게 YUI의 다른 작품들의 PV를 보다가, 점점 이 분의 작품 세계에 빠져들었습니다.
 요즘 들려오는 소식으로는 영화 ‘카이지’의 삽입곡 2곡 정도를 새로 선보일 예정이라고 합니다. 10월 중순 정도라고 하더라구요. It’s all too much와 Never say die라고 들었습니다.

 올해 6월에 나왔던 싱글 ‘Again’이 예전의 싱글에 비해서 많이 약한 감이 있었습니다만, 이번 10월에 나올 싱글은 흥행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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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I님♡

자신을 이기는 것

대학교 첫 여름방학이 벌써 1달과 보름 정도 지났다. 이제 남은 방학이라곤 1달 뿐이다.


시간이 참 빨리 간다.


이번 여름방학때 그동한 하고 싶었던
영어공부라든지, 알바라든지…
이것 저것 하려고 막연히 생각을 하면서 방학을 시작했지만…

역시 목표를 정하지도 않고, 더구나 나를 채찍질하지도 잘하지 못해서
시간은 자꾸 덧없이 흘러만 갔다.

이래서 느낀 점은…




자신을 이기는 것

그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한자로는 극기(克己)라고 하는데, 이는 ≪논어≫에서 공자가 ‘욕망을 누르고 이상과 목적을 실현하는 일’이라고 한다.

무자비한 더위가 나와 우리를 나태하게 만들고, 이로써 나와 우리를 방황과 욕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린다.

뭐 이번 여름방학때 딱히 해야할 일이라거나 하는 목표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이건 아니다’라는 일을 하게 된다.

문제는 그 일을 하게 되고, 이 것이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여름 햇살의 후끈후끈한 화로 속에 갇혔는 나는, 혹은 나태와 방황이라는 끈적끈적한 늪에 빠졌던 나는, 그런 일을 계속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 딱히 다른 일을 할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극기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첫번째 실마리가 내 손에 들어왔다.

내가 12년 동안, 고3 때 체력 관리 차원에서 줄넘기를 하던 것을 제외하고는, 운동을 한 적이 없었다.

이제 줄넘기같은 작은 운동에서부터 시작하면서, 나를 이기는 방법을 계속 찾아내겠다.

레크홈이 걸어온 길 3 – RPG 세상 밖의 혼란과 개척

 이 글은 전에 레크홈에서 연재했던 글을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레크홈이 걸어온 길’을 제가 1년 전인가, 2년 전인가 3부작 연재 기획으로 내겠다고 밝혔는데, 그럴 생각은 하지도 않고 벌써 몇 년이 흘러버렸습니다. 빨리 과거와 역사를 정리하고, 미래를 위한 대비, 현재에 대한 충실함으로 가득한 생활로 돌아가고자 하여, 이 연재를 마치고자 합니다.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 역사는 반드시 짚어가야할 것입니다.

     제가 만든 홈페이지는 1999년(10세,초3)에 ‘홍경환의 롤러코스터 타이쿤’에서 시작하여, 현재 2009년(20세) ‘RedcHome.net’까지 약 11년 간 긴 역사를 따라 흘러왔습니다. 또한 제가 9년 간 제작, 운영했던 홈페이지들은 제 유년기의 일부를 장식했던 만큼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그 중에서 ‘REDC의 RPG세상’ 같은 사이트는 ‘싱글 바람의나라’를 통해 비록 패러디 게임이지만, 자라나는 많은 새싹들에게 RPG 게임을 제작할 동기를 제공하는 의의를 제공하기도 했던 의의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3부작으로, ‘레크홈이 걸어온 길’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긴 역사를 3년씩 혹은 5년씩 끊어서, 그 역사에 대해 최대한 자세히 저의 기억을 살려서 설명을 하며 연재할 계획입니다. 많이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연재 계획]


[1] 게임을 좋아한 아이 (1999-2001)
[2] 나만의 RPG 세계를 찾아서 (2002-2004)
[3] RPG 세상 밖의 혼란과 개척 (2005-2009)




[3] 레크홈 (2006.9-2009.4 현재)



     RC Soft를 폐쇄한 2005년 하반기부터 2006년 상반기까지는 거의 혼란기였습니다. 한국디지털미디어고등학교에 진학해서 탱자탱자(?) 놀기에 바빴고, 자아 성찰은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혼란을 거듭하다가, 2006년 9월에 되어서야 레크홈을 차리게 이릅니다. www.redchome.net이라는 당당한 국제 도메인도 있겠다, 호스팅 업체는 훨씬 나은 곳으로 옮겼지요. 레크홈은 저 홍경환의 블로그로서, 제가 RPG 세상이라는 좁은 세상에서 나와,혼란과 개척을 반복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홈페이지입니다.

     레크홈 초기인 2006년부터 2008년까지는 고등학생으로서의 삶의 애환, 그리고 IT세계에 대한 열망, 애니메이션과 게임에 대한 탐닉 등이 스며들어있습니다. 레크홈의 스킨 또는 디자인은 대개 몇 달에 한 번씩 바꾸었습니다. 맨 처음의디자인은 제가 캡쳐를 못했고, 지금까지의 디자인 중에서 대표적인 것 몇 개만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레크홈 Christmas Ver.(텟사 버전) (2006.12.5)

부제목 : 이상을 향한 레크의 무한한 항해
 NT 노벨 풀 메탈 패닉에 열광하던 때의 디자인입니다. 텟사 대령님께서 사가라 소스케에게 텟사와 카나메의 생일인 크리스마스에 크루즈 호 위에서 실연당하는 모습이고, 이 일러스트는 NT노벨 풀 메탈 패닉 12권 표지에 있는 것입니다. 이 디자인은 제가 처음으로 포토샵으로 만들어본 디자인이었습니다. 이 이후로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까지는 포토샵으로 손수 디자인한 적이 없다고도 하죠. -_-;;; (꽤 고생 많이 했거든요. 스타일 시트도 안쓰고…)

이 때에는 레크홈의 부제목이 ‘이상을 향한 레크의 무한한 항해’였습니다.



그로 부터 많은 나날이 흐르고, 2008년에는 수능 117일을 앞두고 레크홈 활동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기에 이릅니다.



2009학년도 수능(2008.11.13)이 끝난 후 얼마 안되어, 레크홈에는 다시 생기가 돌아옵니다.



△레크홈 – 과도기 디자인 (2008.11.24)

부제목 : 꿈을 향해 세계로 십만 리 날아가다
 제가 2009학년도 수능을 마치고, 레크홈을 다시 손보는데, 스스로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 디자인하기에는 너무 버거워서 그냥 다른 분의 스킨을 가져와서 덮어 씌웠습니다. 그래도 의외로 잘 어울렸어요.



△레크홈 – 자유의 바다 (2009.1.16)

부제목 : 진주같은 에너지를 만들자! – 진주같은 에너지는 절차탁마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디자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디자인의 의의는 첫째, 100% 손수 디자인(삼족오도 제가 디자인했구요.), 둘째로는 W3C XHTML 1.0 표준 준수로 크로스 브라우징 실현, 셋째로는 반영구적인 디자인 실현(특정 이벤트나 계절을 겨냥한 디자인이 아니지요.)으로 들 수 있겠습니다.

부제목도 ‘진주같은 에너지를 만들자!’로 바꾸었는데, 이는 혼란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개척자의 길으로 오름을 선포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레크홈이 걸어온 길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앞으로는 미래 지향적이면서 현재에 충실한 삶의 자세를 가질 것을 기원하며…

레크홈이 걸어온 길 2 – 나만의 RPG세계를 찾아서

이 글은 전에 레크홈에서 연재했던 글을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레크홈이 걸어온 길’을 제가 1년 전인가, 2년 전인가 3부작 연재 기획으로 내겠다고 밝혔는데, 그럴 생각은 하지도 않고 벌써 몇 년이 흘러버렸습니다. 빨리 과거와 역사를 정리하고, 미래를 위한 대비, 현재에 대한 충실함으로 가득한 생활로 돌아가고자 하여, 이 연재를 마치고자 합니다.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 역사는 반드시 짚어가야할 것입니다.

     제가 만든 홈페이지는 1999년(10세,초3)에 ‘홍경환의 롤러코스터 타이쿤’에서 시작하여, 현재 2009년(20세) ‘RedcHome.net’까지 약 11년 간 긴 역사를 따라 흘러왔습니다. 또한 제가 9년 간 제작, 운영했던 홈페이지들은 제 유년기의 일부를 장식했던 만큼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그 중에서 ‘REDC의 RPG세상’ 같은 사이트는 ‘싱글 바람의나라’를 통해 비록 패러디 게임이지만, 자라나는 많은 새싹들에게 RPG 게임을 제작할 동기를 제공하는 의의를 제공하기도 했던 의의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3부작으로, ‘레크홈이 걸어온 길’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긴 역사를 3년씩 혹은 5년씩 끊어서, 그 역사에 대해 최대한 자세히 저의 기억을 살려서 설명을 하며 연재할 계획입니다. 많이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연재 계획]


[1] 게임을 좋아한 아이 (1999-2001)
[2] 나만의 RPG 세계를 찾아서 (2002-2004)
[3] RPG 세상 밖의 혼란과 개척 (2005-2009)




[2-1] 레드캐롯(레크) 커뮤니티 (2002-2003.1)

http://redc.fu.st http://redc12.wo.to

     2001년 말부터 저는 넥슨의 머그게임인 ‘바람의나라’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당시 바람의나라는 정액요금제를 실시하고 있었고, 저는 그 요금이 학생으로써는 너무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바람의나라를 ‘싱글 모드’로 옮겨 놓는다면, 비록 혼자하는 외로움이 있더라도, 바람의나라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싱글 바람의나라”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싱글 바람의나라는 2002년 상반기에 완성되었고, 하나포스 자료실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싱글 바람의나라를 만든 후, 2002년 하반기에는 ‘이제 패러디 게임 말고, 나만의 RPG 스타일을 찾아보자’는 신념으로 콜로서스 어드벤처를 만들었습니다. 유일하게 완성한 액션 알피지였죠. 콜로서스 어드벤처를 만드는 중에 레드캐롯 소프트를 설립(?)하여 액션 싱글 바람의나라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싱글 바람의나라는 서울경제신문을 통해 두 차례 소개되었고, 현재까지 하나포스 자료실에서는 다운로드 수가 수십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콜로서스 어드벤처 이후에는 판타지 아일랜드 1 – New Heroes와 판타지 아일랜드 2 – My Diary를 만들게 이릅니다. 이 때 판타지 아일랜드 1은 지금까지 제가 만든 게임 중에서는 완성된 대작이며, 판타지 아일랜드 2는 유일한 미완성작입니다. (액션 RPG 구현에 있어서의 리소스 조절 실패로 일어난 슬픈 일이죠.) 이 쯤에는 레크 커뮤니티로 이름을 간소화하였습니다.




△레드캐롯 커뮤니티 2.0 (2002년 상반기로 추정)
옛날 홈페이지라, 많이 깨져있네요. 회색톤의 디자인은 저의 구상이었고, 메인페이지의 파란색 톤의 테이블은 타마님이 디자인해주신 것 같습니다. 이 때는 이미 싱글 바람의나라를 완성한 상태에서 콜로서스 어드벤처를 만들었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레드캐롯 커뮤니티 2.0 (2002년 상반기로 추정)
이 때 레드캐롯 소프트가 결성되어서 싱글 바람의나라 액션버전을 만들었나봅니다.

△레드캐롯 커뮤니티 2.0 (2002년 상반기로 추정)

커뮤니티… 한마디로 게시판을 공짜로 제공하는 서비스도 있었네요. 지금 봐도 내가 어떻게 이런 걸 다했나 신기합니다. -_-;

 
△레드캐롯 커뮤니티 Second (2002년 9월)

Second버전의 레드캐롯 커뮤니티. 저 때는 잘 생각이 안나네요.

 
△레크 커뮤니티 (2003년 1월)

이 때부터인가 ‘아마추어 게임 제작 커뮤니티’로 탈바꿈했을 것입니다. 이 때는 판타지 아일랜드 1, 2를 제작하고 있었지요.



[2-2] ARM 커뮤니티 (2003.3-2004.6)



     2003년 3월부터는 ARM 커뮤니티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이름하여, 아마추어 롤플레잉 게임 제작자들의 커뮤니티(Amateur RPG Maker Community). 이 때는 방문자 수가 서서히 줄어들면서, 이제 홈페이지는 안정화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 때에는 판타지 아일랜드 2를 한창 제작하고 있었는데, 이 프로젝트는 위에서 언급하였다시피 무산되었습니다.

     이 때에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통신언어 금지 홈페이지’로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는 점입니다. 통신언어 사용을 단속하느라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_-;;;;

     2003년 하반기부터 홈페이지는 점점 기울어가기 시작합니다. 내분이 일어나면서, 회원분들이 하나둘씩 빠져나와, 활동이 급격히 줄어들게 됩니다. 그 와중에서 2003년 12월에는 저의 최후의 작품인, 새로운 동양풍 RPG ‘몽고침략기’ 제작을 착수하게 됩니다. 몽고침략기 제작은 2005년 상반기까지 계속됩니다.



 
△ARM 커뮤니티 (2003년 3월)

 이 때부터인가, 방문자 수는 급감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수백명, 수십명… 이렇게 줄어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ARM 커뮤니티 (2003년 4월)

 소설대회도 열고, 개인작가방도 있고… -_-;;; 정말 대단했군요.

△ARM 커뮤니티 (2003년 8월)

디자인 바뀐 ARM 커뮤니티. ‘통신언어 금지 홈페이지’ 표시가 눈에 띕니다.

△ARM 커뮤니티 (2003년 8월)

 D&C Soft… 저는 잘 기억이 안나는데… 제가 아마 레드캐롯 소프트 이후로 무언가를 또다시 했나봅니다! -_-!!!

 
△ARM 커뮤니티 (2003년 8월)

 이 때 판타지 아일랜드 2 – My Diary의 Build 007까지 내고 미완성으로 영구 제작보류를 선포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ARM 커뮤니티 (2003년 8월)

 ARM 커뮤니티의 ABOUT 부분… 레드캐롯 커뮤니티가 생긴 날은 정확히 1998년 11월 15일이고, ARM 커뮤니티가 생긴 날은 정확이 2003년 3월 10일이었습니다. 오오 이런 좋은 자료가…

△ARM 커뮤니티 6.1 (2003년 10월)

 드디어 6.1 버전으로 리뉴얼. 안정적이었던 ARM 커뮤니티가 이 때부터 기울었나 봅니다. 부운영자 네메시스님이 너무나 현 상황이 답답해서 적으신 글이군요. 내분이 한창이던 시절이었지요.



 △ARM 커뮤니티 v6.1 (2003년 12월)

 ARM 커뮤니티를 운영하면서, 동양풍 RPG인 몽고침략기까지 만들고… 정말 그 때는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_-;

이때 2003년 하반기부터 몽고침략기 제작에 들어가게 됩니다.

 
△ARM 커뮤니티 v7.0 (2004년 1월)

굉장히 활동이 위축되었을 때의 ARM 커뮤니티 시절입니다. 부운영자는 총 3명. MAIN존과 MAKE존과 COMMUNITY존의 3개 존으로 크게 축소된 구조조정이 있었군요.

 

△ARM 커뮤니티 v7.0 (2004년 6월)

 ARM신문, 그리고 웹게임… 홈페이지의 활성화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ARM 커뮤니티 v7.0 (2004년 6월)

 아닛, 6월인데 아직도 크리스마스인가?! -_-;; 그때 당시의 커뮤니티존. 그 중 ‘나라사랑!’란이 가장 눈에 띄는군요. 그때는 굉장히 애국이라는 가치관에 열중했었지요.

 
△ARM 커뮤니티 v7.0 (2004년 6월)

 MAKE존의 모습입니다. MAKE존 활성화를 위해서 MAKE존 이벤트를 펼쳤군요.

 
△ARM 커뮤니티 v7.0 (2004년 6월)

 MAKE존의 특수제작소. 몽고침략기 베타 2 제작중이었군요. 몽고침략기가 한창 제작 중인 이때. 몽고침략기 제작은 2005년 상반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

△ARM 커뮤니티 v7.0 (2004년 6월)

 MAKE존 이벤트의 시상자들의 이름이 오르는 명예의 전당. 빨간색으로 범벅된 테이블이 인상적입니다. 후덜덜.




[2-3] Eyatho 커뮤니티 (2004.8-2004.12)



     이 때는 ARM 커뮤니티 때의 쇠락세를 그대로 타고, 완전히 ‘아마추어 RPG 제작 사이트’로서 끝을 선언하게 되었습니다. 이 이후로 저는 ‘커뮤니티’식의 홈페이지 운영에 싫증을 느껴서 Eyatho 커뮤니티의 문을 닫고, 몽고침략기 작품 하나에 집중하는 방식을 택하게 됩니다.

△Eyatho 커뮤니티 8.0 (2004년 8월)

이 때는 홈페이지가 거의 쇠락한 때인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Web Archive에는 이 시절의 대문만 남아있고, 내부는 나와있지 않군요. 안타깝습니다.




[2-4] 몽고침략기 공식 홈페이지 (2005.1-2005.2) http://redc12.wo.to


     잠시 운영했던 몽고침략기 공식 홈페이지입니다. 이대로 작품 하나에 집중하는 방식을 택했어야 하는건데…

△몽고침략기 공식 홈페이지 (2005년 2월)

Eyatho 커뮤니티까지의 ‘RPG 제작자 커뮤니티’ 형태의 홈페이지 운영에 싫증을 느껴서 몽고침략기 작품만의 공식 홈페이지의 열게 되었습니다. 아, 아닛… 그런데, Web Archive에 있던 기록이 너무 많이 깨져버렸군요…




[2-5] RC Soft (2005.2-2005.하반기)



     2005년 하반기까지 운영한 RC Soft입니다. ‘커뮤니티 사이트’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어, 다시 커뮤니티 사이트를 열었습니다. 이는 얼마 가지 못하고, 결국 2005년 하반기에 폐쇄 결정을 하게 됩니다.

 
△RC Soft – First Renewal (2005년 2월)

 얼마 가지 못한 RC Soft의 대문입니다. 2월 중순 완공 예정이라고 쓰여 있네요.

 
△RC Soft – First Renewal (2005년 2월)

 RC Soft의 내부입니다. 얼마 가지 못한 홈페이지이지만, 정겹습니다.



이렇게 RC Soft 폐쇄를 결정한 이후로 계속 커뮤니티 사이트를 열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는 레크홈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3부에는 레크홈의 역사를 싣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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