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5에서 최대 스케일을 자랑하는 ‘르네상스로’ 시나리오에서 오스만 투르크로 실제로 1529년, 1683년에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났던 빈 공방전을 재현해보았다.
예니체리와 사파히 부대를 이끌고 험난한 산지를 뚫고 빈을 포위! 실제 오스만 제국은 빈 성의 성벽을 화약을 사용한 폭탄으로 빵빵 폭발시켰지만, 게임에서는 기술 발전이 너무 느려서 트레뷰셋을 대체. 그리고 성이 함락할 타이밍이 되면 폴란드의 그 유명한 윙드 후사르 창기병 부대가 투르크 군대를 휙휙 쓸고 다니며 퇴각하도록 만들지만, 저 확장팩에서는 폴란드가 안 나와서 아쉽다.
빈 공방전은 세계사적으로도 굉장히 유명하다. 1차 빈 공방전 당시에는 쉴레이만 1세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페르시아 서쪽의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동유럽을 포함해 3개 대륙을 휩쓸고 다니는, 그야말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세계 대국으로 성장하고 있었고, 카를 5세의 합스부르크 제국(보통 신성 로마 제국 혹은 오스트리아 제국이라고도 부르나, 합스부르크 왕가의 혼인확장에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이렇게 부르겠다)은 혼인동맹과 전쟁으로 영국-프랑스 일부-이탈리아 일부를 제외한 서유럽을 제패하고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도 휩쓸고 있었다. 즉, 3대륙의 왕 두 명이 맞붙은 셈이다. 이 때 당시 세계적인 제국은 명, 오스만 투르크, 합스부르크 제국이 전부였으니까.
이런 관점에서 보면, 1, 2차 세계대전은 말 할 것도 없고, 그 이전에 국제질서를 바꾼 대사건들 중 하나로서 ‘빈 공방전’을 꼽을 수 있다고 본다. 혹자는 레판토 해전을 꼽지만, 다른 학자분들도 지적했듯이, 레판토 해전 이후로도 오스만 투르크 해군은 건재했고, 당시 세계경제에서 지중해의 비중이 워낙 축소된 시점이니까 패스.
1, 2차 빈 공방전을 거치면서 모두가 알다시피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패전의 충격이 커서 내부 분열을 비롯한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 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예니체리의 반란과 지방 총독들의 반란 등으로 와해되어 국가 막장 테크를 타게 된다. 또한 합스부르크 제국은 비록 100년 수명을 연장했지만, 사방에 포진한 신흥국들의 기에 눌리고 곳곳에서 종교개혁으로 인해 반란이 일어나서 제국은 와해되고 소국으로 전락하고 만다.(물론, 그 이후에 생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도 만만치 않은 강소국이다.)
빈 공방전 이전까지 기독교인들과 무슬림들의 충돌을 보면, 몇몇 십자군 원정을 제외하면 기독교 국가가 이슬람 국가에게 맨날 두드려 맞는(?) 양상이었다. 우리나라의 정규 역사 교육과정을 제대로 들었다면 원래부터 유럽이 잘 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나마 이베리아 반도에서 스페인의 레콩키스타로 힘겹게 무슬림들의 세를 꺾었지만, 동유럽에서는 투르크가 찬란한 1000년의 비잔틴 제국도 가뿐히 멸망시키고, 완전히 투르크의 텃밭으로 만들어버렸다. 빈 공방전 이전의 이런 상황은 기독교인들에게, ‘최후의 심판’ 같은 간담 서늘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이 전투에서 그렇게 무서운 투르크가 여지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유럽인들은 무슬림 국가에 대한 공포를 끝내고 아시아 대륙에도 제국주의를 뻗치게 된 것이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그 유명한 ‘미나스티리스 전투’도, 빈 포위전을 모델로 했다고. 그러니까 곤도르가 오스트리아, 로한이 폴란드, 모르도르가 오스만 투르크인 셈. 당시 유럽인들이 오스만 제국에 대해 느끼는 공포가, 반지의 제왕을 통해 표출된 셈이다. 참 묘하게도, 미나스티리스 전투 이후 완전히 몰락한 모르도르는 당시의 투르크와 겹쳐 보인다. 그 전투 이후로 곤도르는 과연 예전의 영광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을까? 폴란드와 묘하게 겹치는 로한은 어떠한 운명을 맞았을까?
사실 빈 공방전에 대해, 최근에 ‘비엔나 전투 1683’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고 한다. 이건 두 차례의 빈 공방전 중에서 2차 빈 공방전을 두고 만들어진 영화. 국내에 개봉은 했지만 상영관이 별로 없는 것 같아서 극장에서는 못 볼 것 같다.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서 판매하고 있으니, 이걸 통해서 봐야겠다.